누가복음 2:8-21

누가복음 2:8-21 (공동번역)

8 예수께서 구유에 뉘신 날 그 근방 들에는 목자들이 밤을 세워가며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 9 주님의 영과의 빛이 그들에게 두루비치며 주님의 천사가 나타났다. 목자들은 겁에 질려 떨었다. 10-12는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모든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이다. 오늘 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한 갓난 아이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것을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바로 그분을 알아보는 표이다] 하고말했다. 13-14 에 갑자기 수 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그 천사와 함께 하느님을 찬양했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15-16 천사들이 목자들을 떠나 하늘로 돌아간 뒤에 목자들은 서로 [어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그 사실을 보자] 하면서 곧 달려가 보았더니 마리아와 요셉이 있었고 과연 그 아기는 구유에 누워 있었다. 17 아기를 본 목자들이 사람들에게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전했다. 목자들의 말을 들은 다사람들은 모두 그 일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19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 깊이 새겨 오래 간직했다. 20 목자들은 자기들이 듣고 보고 한 것이 천사들에게 들은 바와 같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돌아갔다. 21 여드레째 되는 날은 아기에게 할례를 베푸는 날이었다. 그 날에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준 대로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눅2:8-21
//밤을 새워가며 들에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아기 예수, 곧 메시야가 태어났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당시 목자들은 가난한 했고 삯군 목자들이었을 것이다. 삯군 목자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양치기 소년과 늑대 동화처럼, 그들의 말은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신뢰할 수 없는 목자들을 예수 탄생의 첫 증인으로 택했다. 주님은 이들도 소중히 여기신다. //사람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목자들은 자신들도 천사의 말을 신뢰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천사가 전해 준 메시야의 탄생은 너무나도 간절한 소식이었다. 그래서 목자들은 천사가 전해준 기쁜 소식을 확인하기 위해 (양 떼를 버려둔 채) 베들레헴으로 갔다. 그리고 천사로부터 들은 말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목자들은 이번에는 거짓말이 아니 자신들이 듣고 본 바를 전했다. 목자들이 전한 기쁜 소식에 사람들은 신기해 했다. 놀랐다.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나 사람들은 목자들이 전한 천사이야기를 과연 믿었을까? 오직 이미 천사를 만난 마리아(와 요셉)만 이 사건을 마음에 새겼다.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이름을 천사가 알려준 대로 ‘예수’라고 지었다. 순종이다. ////성탄절이다. 예수 탄생을 마음에 새기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지 않으면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는 허사에 불과하다. 교회는 양치기 소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베들레헴 들녘 목자들처럼 기쁜 소식을 확인 했으면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도 선한 목자이신 예수를 따라야 한다.

////성탄절 예매 설교 제목은 헤아림. 하나님은 가장 비천한 신분의 하나였던 목자들에게 찾아오셨다.

누가복음 2:1-7

누가복음 2:1-7 (공동번역)

1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가 호구조사령을 내렸다. (2 첫 호구 조사를 하던 때, 시리아에는 퀴리노라는 사람이 총독이었다.) 3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본 고장에 등록하러길을 떠났다. 4 요셉도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유다 베들레헴으로 갔다. (베들레헴은 다윗 왕이 태어난 고을이고 요셉은 다윗의 후손 이다.) 5 요셉은 약혼자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갔다. 그 때 마리아는 임심중이었다. 6 베들레헴이 머물러 있는 동안 산달이 되었다. 7 드디어 아이를 낳았다. 여관에 그들이 머물 방이 없어서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

눅 2:1-7
//로마 황제 아구스도, 시리아 총독 구레뇨 모두 역사에 남아 있는 이름이다. 예수는 역사 속으로 오셨다. 다만 구레뇨가 시리아 총독이 되었던 때는 AD 6년 경으로 알려져 있다. 예수의 탄생시점보다 후대다. 예리한 의사 누가가 이점을 놓쳤을까? 구레뇨가 첫호구 조사를 하던 때에는, 아마도 구레뇨가 총독서리이거나 전임 총독 아래서 호구조사를 담당하던 책임자였고 AD 6년경에 정식 총독으로 임명되었다고 추론한다면 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요셉부부는 호구조사를 위해 굳이 베들레헴을 가야했을까? 문중의 땅이 베들레헴에 있었기 때문이다. 족보상 요셉도 유다 가문이 분배받은 땅 중에서 다윗가문이 분배받은 지목에 대한 권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한국식으로 말하면 요셉은 다윗 가문의 종손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관에 그들이 머물 방이 없었다. 베들레헴에 머무는 동안 요셉부부는 여관에 머물지 않았을 것이다. 문중/친척집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아니면 나그네를 환대한 한 집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관에 그들이 머물 방’이 없었다는 것은, 그들이 머문 곳에 해산을 위해 준비된 방(객실)이 따로 없었다는 뜻일 것이다. (당연히 본문의 여관은 오늘날의 호텔은 아니다. 기껏해야 주막정도다. 이런 곳에서 해산할 곳(객실)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왕이나 부자들이 해산하는 객실(여관방)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객실은 꿈도 못꾸는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가축이 해산하는 곳에서 태어나셨다. (성탄절 성극에서처럼, 돈은 있는데 만실이어서 객실을 얻지 못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하늘 보좌에서 태어나셔햐 할 분이 우리를 위하여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가장 비천하게 이 땅에 오셨다. ////우리를 소중히 여기셔서 이 땅에 오셨다.

누가복음 1:26-38

누가복음 1:26-38 (공동번역)

엘리사셉이 아기를 가진 지 여섯 달이 되었을 때, 하느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갈릴래아 나자렛 동네 다윗 가문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를 찾아가게 하셨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하고 인사를 했다. 마리아는 몹시 당황하며 천사의 말을 곱씹었다. 그러자 천사는 다시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에게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시어 야곱의 후손을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되겠고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하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마리아가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자 천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라고들 하였지만, 그 늙은 나이에도 아기를 가진 지가 벌써 여섯 달이나 되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 이 말을 든은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눅1:26-38
//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야,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 하신다.” 마리아는 천사의 이 말을 듣고 몹시 놀라며, 도대체 그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궁금히 여겼다. 주님께서 “용승아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야,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 하신다.” 하고 읽어 본다. 물론 마리아 처럼 놀라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 역시 주님이 나를 통해 일하실 것을 궁금해 하며 기대하게 된다. //그렇다면 마리아와 같은 반응을 해야 한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안다면 믿고 순종해야 한다. 임마누엘을 누리는 길은 성령이 나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복음의 능력)이 나를 감싸 주실 때다. 바울의 표현을 빌린다면 그리스도로 옷입는 삶이다. 성령충만이다. ////주의 성령을 제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아멘

미가 5:2-9

미가 5:2-9 (공동번역)

2 에브라다 지방 베들레헴은 유다 부족들 가운데서 보잘 것 없으나, 나(하느님) 대신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 혈통으로 더듬으면 까마득한 옛날로 올라간다. 3-6 그 여인이 아이를 낳기까지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을 내버려두신다. 남은 겨레(민족)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면 그가 백성의 목자로 나선다. 야훼의 힘을 입고 하느님 야훼의 드높은 이름으로 목자 노릇을 한다. 그의 힘이 땅끝까지 미쳐 모두 그가 이룩한 평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 아시리아가 쳐들어 와 이 땅을 짓밟을 때 우리는 목자 일곱과 장군 여덟을 세워 맞설 것이다. 일곱 목자와 여덟 장군이 아시리아를 칼로 다스린다. 칼로 니므롯 땅을 다스린다. 아시리아가 쳐들어와 나라를 짓밟을 때 야훼께서 우리를 아시리아 손에서 살려내신다. 7-9 살아남은 야곱의 후손은 뭇백성 가운데 끼어 살며 야훼께서 내리는 이슬과 가랑비로 사람이 기우제를 드리기 전에 기다리는 일 없이 때가 되면 내리는 비가 된다. 한편 살아 남은 야곱의 후손은 뭇백성가운데 끼어 살며 짐승의 왕 사자와 같이 이리저리 오가며 양 떼 가운서 이리저리 오가며 짓밟고 찢어발겨도 아무도 저항하지 못할 것이다. 한 번 손을 들어 원수를 치며 적군은 하나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미가5:5
‘모두 그가 이룩한 평화를 누리며 살리라. 아시리아가 쳐들어와 이 땅을 짓밟을 때, 우리는 목자 일곱을 세워 맞서리라. 장군 여덟을 세워 맞서리라’ 공동번역

//이 땅에서 메시야의 나라의 평화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앗수르가 쳐들와 와 이 땅을 짓밟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해도 고난도 있고 박해가 여전히 있을 수 있다. 로마서 말씀대로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우리는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꿈꾸며 산다. 혼자가 아니다.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일곱이요 여덟이다. //십자가 앞에서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질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혼자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도 임마누엘로 평안을 누리신다고 말씀하신 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고 하고 말씀하셨다. 일곱 목자 여덟 장군보다 더 위대하신 예수께서 우리의 대장이 되신다. 진정한 평화는 임마누엘이다. //성탄을 기념하는 주간이다. 우리도 세상에서 때를 따라 내리는 비처럼 이 땅에 사랑을 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도 세상에서 악에 대하여 젊은 사자처럼 담대하게 살아야 한다.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임마누엘을 누리며 사랑을 나누며, 또 담대하게 살게 하소서.

로마서 16:17-27

로마서 16:17-27 (공동번역)

17-18 바울은 로마 교우들을 형제라고 부르며 남들을 분열 시키고 죄짓게 하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멀리하라고 권한다. 남들을 분열시키고 죄짓게 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고 자기네 뱃속을 채우는 사람들이며, 그럴 듯한 말과 아첨하는 언사로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하는 자들이다. 19 바울은 로마 교우들의 충성스런 신앙 생활이 사방에 잘 알려져 있어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고 전한다. 로마 교우들이 선한 일에는 현명하고 악한 것에는 물들지 않기를 바란다. 20 평화를 주시는 하느님께서 사탄을 우리들의 발 아래 굴복시켜 주실 날이 멀지 않았다. 우리 주 예수의 은총이 우리에게 내리시기를 빈다. 21 바울과 함께 일하고 있는 디모테오와 친척들 루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드로가 문안한다. 22 이 편지를 받아쓰는 데르디오도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한다. 23 바울과 모든 교우를 잘 돌보는 가이오가 문안한다. 재정관 에라스도와 교우 과르도가 문안한다. 24 없음 25 하느님께서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을 통해서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감추어 두셨던 그 심오한 진리를 나타내 보여주심으로써 성도의 믿음을 굳세게 해주신다. 26 그 진리는 이제 예언자들의 글에서 명백하게 드러났고 영원하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모든 이방인들에게 알려져 그들도 믿고 복종하게 되었다. 27 이러한 능력을 가지신 지혜로우신 오직 한 분뿐이신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토록 영광을 받으시기를 빕니다. 아멘

롬 16:17-27
//바울은 로마서를 마치면서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못하면 믿음이 없는 것과 다를게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바울은 로마 성도의 순종이 모든 사람에게 소문이 났다고 칭찬했다. 믿음이라는 단어 대신 순종이라는 단어를 썼다. 마지막 세 구절에서 복음이 하나님이 명을 따라 이방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이방사람들이 믿고 순종하게 되었다고 적는다. ‘믿고 순종’은 믿음의 순종이다. 두 단어 모두 명사형이다. ‘믿음=순종’의 등식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편지를 마무리 한다. 예수 믿으면의 실체는 예수께 대한 순종이다. 순종을 행위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순종이 믿음이기 때문이다. [나사로의 죽음에, 예수께서 누이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은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르다는 예수께 “예, 주님! 내가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했다. 하지만 무덤 앞에서 돌을 옮겨 놓으라는 예수의 명령에 마르다는 “주님, 죽은 지가 나흘이나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고 대답했다.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라고, 내가 네게 말하지 않았느냐?” 하고 말씀하시자, 그제서야 사람들이 돌을 옮겨 놓았다. 믿음은 허사가 아니라 순종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믿음은 예수를 따르는 길이다.